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퀀트 윈드 작전 (문단 편집) === 북베트남의 침공 === [[1974년]] [[12월 13일]] [[북베트남]]군의 전면 공세가 시작되었다. [[미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제럴드 포드]]는 남베트남을 도와야 한다고 했는데 [[미국 의회]]에서 --돈 없다고-- 막았다.] 미국의 지원을 받지 못한 남베트남군은 패배와 붕괴를 거듭했다. [[1975년]] [[1월 5일]] 사이공 서남쪽 푸옥롱 성의 주도 푸옥빈이 함락되었다. 푸옥빈은 북베트남군이 처음으로 함락시킨 남베트남의 성도였다. [[3월 18일]] 중부 고원지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닥락성의 부온마투옷이 함락되었다. 승리한 북베트남군은 중부 고원지대를 차지하여 동쪽 해안에 주둔 중이던 남베트남군에게 아낌없이 공세를 퍼부을 수 있었다. [[응우옌반티에우]] 남베트남 총통은 [[메콩강]] 삼각주라도 지키기 위해 동쪽 해안에 주둔 중이던 남베트남군 주력부대를 남쪽으로 후퇴시켜 재편성을 시도했으나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후퇴 계획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던 상태에서 사기가 바닥난 남베트남군 1군단과 2군단은 북베트남군의 공격에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패주 과정에서 북베트남군이 [[노획]]한 막대한 양의 남베트남군 장비는 덤이었다. [[3월 25일]] 남베트남 북부 투어티엔성의 성도이자 [[응우옌 왕조]]의 고도 [[후에]]가 함락되었다. 같은 날 꽝찌성과 꽝남성, 꽝응아이성이 함락되면서 남베트남 1군단이 방어하던 북부 지역에서 유일하게 저항하는 곳은 [[다낭]]만 남게 되었다. [[3월 27일]] 남베트남과 미 해군은 [[다낭]]에서 [[미국인]]과 남베트남 국민을 탈출시키는 철수 작전을 진행했다. 다낭 공항에서 민항기를 이용해 민간인들을 열심히 실어나르고 다낭 항으로 수송선을 보내 3일에 걸쳐서 약 3만 명의 민간인과 군인을 해상으로 철수시켰다. 이렇게 해서 200만 명이 모여든 다낭에서 5만 명 조금 넘는 군인과 민간인을 탈출시켰으나 북베트남군의 진격이 너무 빠르고 민간인을 피난시킬 곳도 마땅치 않았다. [[3월 29일]] 다낭 역시 함락되었다.[* 다낭이 함락되면서 [[다낭 국제공항]]으로 사람들을 구하러 온 당시 상황을 [[CBS(미국 방송)|CBS]] 기자 브루스 더닝이 취재한 영상이 있다.[[https://youtu.be/4TbWVuYMYa8|#]] ] [[3월 31일]], [[달랏]]의 원자력 연구소(DNRI)의 연구용 원자로에 있던 [[우라늄]] 연료봉을 공군 [[C-130]] [[수송기]] 편으로 이동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